자유게시판
내용
김정경, 검은 줄
파업이 길어지고 있었다
주머니엔 말린 꽃잎 같은 지폐 몇 장
만지작거릴수록 얇아졌다
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므로
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
집으로 돌아와 문을 여니
방바닥에 검은 줄 하나 그어져 있다
특수고용자로 분류된 나는
노동조합이 철야 농성 중인 회사 안으로
들어갈 수 없었다 출입문 위에
붉은 글씨로 쓴 부적들 나부끼고
제 이름 외치며 뛰쳐나온 노란 팬지꽃
화단 위에 삐뚤삐뚤 구호를 받아 적었다
나무 기둥의 몸을 열고 나온 날개미들
좁은 방에 검은 줄 늘려가고 있다
문 걸어 잠그고
쓰다 남은 살충제 쏟아 붓는다
혼자서 살겠다고
혼자만 살아보겠다고
고쳐 쓰고 또 고쳐 쓰던 자기소개서
개미들이 따라가며 밑줄을 긋는다
고쳐 쓰다만 자기소개서 위의 검은 줄이 흩어진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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